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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Hermès)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유서 깊고 독창적인 역사를 자랑합니다. 말안장 제작에서 시작 해 현재의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에르메스는 단순한 명품을 넘어 '장인정신'과 '전통'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에르메스의 브랜드 탄생 배경, 주요 성장 과정, 그리고 명품계에서의 독보적인 입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말안장에서 세계 명품까지
1837년 프랑스 파리에서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에 의해 설립된 에르메스는 원래 말안장과 승마용품을 제작하는 공방이었습니다. 창립 당시에는 귀족과 왕족을 대상으로 고급 가죽 제품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며 명성을 쌓았고,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그 품질은 곧 입소문을 타게 됩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마차 액세서리, 가죽 트렁크 등으로 제품군을 넓혔고, 20세기 초 손자인 에밀 에르메스가 경영을 맡으면서 브랜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에밀은 유럽 귀족들과 교류하며 고급 고객층을 타깃으로 전략을 수립했고, 파리 중심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면서 프랑스 명품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1935년 출시된 '켈리 백'과 1984년 '버킨 백'은 에르메스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만든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단순한 가방을 넘어 '문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브랜드는 철저한 수공예 방식과 제한된 생산량으로 희소가치를 높이며 고급 브랜드의 대명사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에르메스는 창립 이념인 장인정신을 유지하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위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창립과 경영 철학: 장인정신과 자부심
에르메스는 처음부터 대량생산과는 거리가 먼 브랜드였습니다. 창립자인 티에리 에르메스는 “최고의 품질을 위한 최선의 손길”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모든 제품을 장인이 수작업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현재까지도 에르메스를 차별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실제로 에르메스의 가죽 제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는 최소 15~20시간 이상이 소요되며, 한 명의 장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제작합니다. 에르메스는 이러한 제작 방식을 통해 제품의 품질뿐 아니라 고객 신뢰를 확보해 왔습니다. 또한 타 브랜드와 달리 외부 디자이너나 마케팅보다는, 내부에서 오랜 시간 수련한 장인과 디자이너들이 중심이 되어 브랜드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창립 이후 지금까지도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상장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품질과 브랜드 철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만 성장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경영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와 희소성, 그리고 고급스러움을 만들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현재까지도 ‘에르메스를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하나의 신분적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럭셔리를 넘어 문화로
에르메스는 성장의 주요 동력을 제품 라인 확장과 꾸준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초기의 가죽 제품 외에도 1920년대부터는 스카프, 넥타이, 패션 액세서리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으며, 이후에는 의류, 향수, 시계, 홈 인테리어까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넓혀왔습니다. 특히 1937년에 출시된 실크 스카프는 프랑스 여성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에르메스는 이러한 확장을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닌, 브랜드 철학을 유지한 ‘문화적 확장’으로 접근했습니다. 모든 제품에는 에르메스만의 유니크한 감성과 품격이 담겨 있으며,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도 동일한 품질 기준으로 통일성을 유지합니다. 또한 패션쇼나 컬래버레이션보다는, 전시회와 예술 후원 등으로 브랜드 가치를 고급화하는 전략을 펼쳐왔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행보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적 기호’로 브랜드를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늘날 에르메스는 단순히 오래된 브랜드가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전 세계 명품 시장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에르메스는 1837년 창립 이후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하며, 럭셔리를 넘어 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품질 중심의 철학과 독립적인 브랜드 전략은 수많은 명품 중에서도 에르메스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진정한 명품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에르메스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에르메스의 역사
1801년 - 티에리 에르메스는 프랑스 이민자 아버지 티에리 에르메스와 독일인 어머니 아그네세 쿠넨 사이에서 독일 크레펠트에서 태어났습니다. 크레펠트는 풍부한 섬유 산업 역사로 인해 '벨벳과 실크의 도시'(Stadt wie Samt und Seide)로 알려져 있습니다.
1828년 - 에르메스 가족이 파리 북쪽의 퐁 오드메르로 이사했고, 티에리 주니어가 가죽 제작 기술을 배우고 하네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831년 - 티에리와 그의 아내 페트로닐 피에르탕은 첫 아들이자 에르메스 왕위의 최종 상속자인 샤를 에밀 에르메스를 세상에 맞이했습니다.
1837년 - 티에리 에르메스가 파리 그랑 불르바르 지구에 마구 제작소를 설립했습니다. 그의 작업장은 유럽 귀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에르메스는 마차 무역에 쓰이는 연철 마구와 굴레도 제작했습니다.
1855년 - 에르메스가 제작한 고품질의 단조 마구와 굴레가 명성을 얻었고, 파리 박람회에서 1등 메달을 포함한 여러 상을 수상했습니다.
1867년 - 에르메스는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두 번째로 1등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1878년 - 티에리 에르메스가 사망함.
1880년 - 에르메스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아버지의 공방 경영을 이어받아 매장을 뤼 뒤 포부르 생토노르 24번지로 이전했습니다. 매장은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마구 장인으로 계속 일하며 유럽, 러시아, 북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엘리트들을 위한 제품을 판매하는 국제적인 소매 판매에 집중합니다.
1900년 - 샤를 에밀은 아들인 아돌프와 에밀 모리스의 도움을 받아 라이더가 안장을 휴대할 수 있도록 고안된 '오 아 쿠루아' 가방을 디자인했습니다.
1902년 - 샤를-에밀이 은퇴하고 사업을 두 아들인 아돌프와 에밀-모리스에게 물려주고, 회사 이름을 에르메스 프레르 또는 에르메스 브라더스로 변경합니다.
1914년 - 에밀 모리스가 러시아 황제에게 안장을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최대 80명의 안장 장인이 작업장에 고용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에밀 모리스는 가죽 제품과 의류에 지퍼를 사용할 수 있는 독점권을 획득하여 프랑스에서 최초로 이 장치를 도입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1918년 - 에르메스는 웨일스 왕자 에드워드를 위해 제작된 최초의 지퍼 달린 가죽 골프 재킷을 선보였습니다. 독점 판매권 계약 덕분에 이 지퍼는 프랑스 전역에서 '페르메튀르 에르메스(fermeture Hermes)', 즉 '에르메스 패스너(Hermes fastener)'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19년 - 말 굴레와 장비 판매가 감소하면서 아돌프 에르메스가 회사를 떠나고, 에밀 모리스가 동생의 지분을 인수합니다.
1922년 - 에밀 모리스의 아내가 마음에 드는 핸드백을 찾을 수 없다고 불평하자 최초의 가죽 핸드백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핸드백은 '오 아 쿠루아(Haut a Courroies)'의 소형 버전으로, 에밀 모리스가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1924년 - 에르메스는 미국에 진출하고 프랑스 리조트에 두 개의 새로운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1929년 - 에르메스는 수영복을 포함한 최초의 여성용 쿠튀르 의류 컬렉션을 선보였으며 파리에서 사전 공개되었습니다.
1935년 - 에르메스는 가장 잘 알려진 오리지널 상품 중 하나인 Sac a depeches 백을 출시했는데, 이는 나중에 켈리 백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37년 - 에르메스가 실크 스카프를 출시했는데, 이 스카프는 재클린 케네디 등 유명인사들에게 즉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1938년 - 체인 당크르 팔찌와 승마용 재킷 및 의상이 클래식 컬렉션에 추가되었습니다. 이 무렵, 회사의 디자이너들은 책, 그림, 그리고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 - 에르메스 향수 부문이 설립되었습니다.
1951년 -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사망하고, 자클린 에르메스의 남편인 로베르 뒤마 에르메스가 조향사 장 르네 게랑(알린 에르메스의 남편)과 함께 회사를 이어받습니다. 두 사람 모두 티에리 에르메스의 증손녀입니다.
1950년대 초 - 에르메스는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드 드뢰의 그림을 바탕으로 한 칼리쉬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에르메스는 상징적인 주황색 상자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56년 - 할리우드 배우이자 모나코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에르메스 삭 아 드페슈를 들고 있는 사진이 라이프 매거진 표지에 실렸습니다. 갑자기 여성들이 에르메스 매장으로 몰려들어 '켈리 백'을 찾게 되었습니다. 에르메스는 삭 아 드페슈를 켈리 백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978년 - 티에리 에르메스의 5대손인 장 루이 뒤마가 회사를 인수하고 같은 해에 에르메스는 24 Rue Faubourg Saint-Honore 옆에 있는 건물을 매입하여 파리의 플래그십 매장을 확장했습니다.
1981년 - 영국 여배우 제인 버킨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그녀의 이름을 딴 상징적인 버킨 백이 출시되었습니다.
2003년 - 장 루이 뒤마가 은퇴한 후, 패트릭 토마스가 에르메스의 새로운 대표가 되었습니다.
2007년 - 에르메스는 뤼 포부르 생토노르 28번지를 인수한 뒤, 파리에 있는 플래그십 매장을 다시 확장합니다.
2012년 - 에르메스 가문의 6세대 구성원인 악셀 뒤마스가 회사 CEO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그 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 오늘날 에르메스는 20초마다 실크 스카프를 하나씩 판매합니다!
- 버킨 백은 오늘날 액세서리 중에서 가장 긴 대기자 명단을 가지고 있는데, 무려 6년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 에르메스는 월가 매장과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 24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에르메스의 유명 고객으로는 마돈나, 엘 맥퍼슨, 킴 카다시안, 빅토리아 베컴, 니콜 키드먼, 줄리앤 무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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